2-1 영미산문 British American Prose 제2장 Shooting an elephant ··· George Orwell(Eric Blair) / 스터디자료 및 방송강의2강
2010/03/22 - [영어 English/2-1 영미산문 British American Prose] - 2-1 영미산문 British American Prose / 제1장 I Have a Dream ····· Martin Luther King, Jr. / 스터디자료


방송강의 2강이라 제1장 I Have a Dream ····· Martin Luther King, Jr. 마틴루터킹쥬니어의 I Have a Dream 뒷부분에서 이어집니다 ^^

영미산문은 좋은 내용인건 알겠는데~... ㅠㅠ 너무 어려웠어요 올해 다시 보면서 열공해야겠네여~

영미산문은 CD Mp3자료가 있네여 ^^ 필요하신분들은 연락주세여 ㅎㅎ

영미산문
영미산문


과목명 :영미산문
저자 :김문수, 김보원, 신현욱
출판사 :방송대출판부
발행연도 :2009
ISBN :9788920928345
발행면수 :290
판형 :크라운판
회원평점 :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필명이죠~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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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 1950년 1월 21일)는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20세기 영어권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 비평가 정치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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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George Orwell) 과 관련한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http://www.orwell.ru/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이 사이트에서 조지 오웰(George Orwell)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욱 좋은 점은
작품의 본문 내용도 확인 하거나 다운 받을 수 있다는 점 입니다~ ^^

오늘 우리가 볼 Shooting an elephant를 클릭하면 바로 본문을 확인 할 수 있어요
http://www.orwell.ru/library/articles/elephant/english/e_eleph
Shooting an elephant

Shooting an elep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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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군요 ^^ 여러분들도 공부하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네여


2. Shooting an elephant

In Moulmein, in lower Burma, I was hated by large numbers of people – the only time in my life that I have been important enough for this to happen to me. I was sub-divisional police officer of the town, and in an aimless, petty kind of way anti-European feeling was very bitter. No one had the guts to raise a riot, but if a European woman went through the bazaars alone somebody would probably spit betel juice over her dress.

미얀마 남부의 몰멘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 그 시기는 내 생애의 유일한 시절로서 (나에게는) 미움 받을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 나는 그 도시 파출소의 경찰관이었다. 뚜렷한 목적 없이 사소한 방식으로 반 유럽적 감정은 극심했다. 어느 누구도 폭동을 일으킬 배짱은 없으면서, 유럽 여성이 홀로 시장에라도 가게 되면 누군가가 그녀의 드레스 위에 구장(베텔)을 씹다가 침을 뱉을 정도였다.

As a police officer I was an obvious target and was baited whenever it seemed safe to do so. When a nimble Burman tripped me up on the football field and the referee (another Burman) looked the other way (고의로 외면하다), the crowd yelled with hideous laughter. This happened more than once. In the end the sneering yellow faces of young men that met me everywhere, the insults hooted after me when I was at a safe distance, got badly on my nerves. The young Buddhist priests were the worst of all. There were several thousands of them in the town and none of them seemed to have anything to do except stand on street corners and jeer at Europeans.

경찰관으로서 나는 명백한 목표물이 되었고 그렇게 해도 별다른 해가 없을 때마다 나는 괴롭힘을 당했다. 재빠른 미얀마인 한사람이 축구장에서 나를 걸고 넘어져, 심판(다른 미얀마인)이 고의로 외면하면, 관중들은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일은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일어났다. 결국 곳곳에서 나와 부딪쳤던 황색의 젊은이들은 조롱 섞인 얼굴을 하고, 안전하게 떨어져 있을 때는 내 뒤에서 경멸하면서 결국 나의 신경을 심하게 건드렸다. 젊은 승려는 그중에서 가장 심했다. 그 도시에는 그런 젊은이들이 몇 천 명이나 되었는데 다른 할 일이 없었는지 모두들 거리 모퉁이에 서서 유럽인들을 조롱하기만 했다.

All this was perplexing and upsetting. For at that time I had already made up my mind that imperialism was an evil thing and the sooner I chucked up my job and got out of it the better. Theoretically – and secretly, of course – I was all for the Burmese and all against their oppressors, the British. As for the job I was doing, I hated it more bitterly than I can perhaps make clear. In a job like that you see the dirty work of Empire at close quarters.

이 모든 일들은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이미 제국주의가 나쁜 것이고 그래서 가급적 내 일을 빨리 집어치우고 나올수록 나에게 이로울 거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 물론, 은밀하게 - 나는 미얀마 사람들을 전적으로 지지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반감을 가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제국주의의 경찰관)에서, 아마도 내가 분명히 밝힐 수 있는 것보다 더 지독하게 그 일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일(제국주의의 경찰관 노릇)에서 우리는 (대영)제국의 더러운 작태를 가까이서 보게 된다.

 

The wretched prisoners huddling in the stinking cages of the lock-ups, the grey, cowed faces of the long-term convicts, the scarred buttocks of the men who had been flogged with bamboos – all these oppressed me with an intolerable sense of guilt.

악취를 풍기는 교도소 감방에서 복닥거리는 비참한 죄수들, 장기수감자의 창백하고 겁에 질린 얼굴들, 대나무 매질로 흠씬 얻어맞은 흉터 진 볼기짝 -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혔다.

 

But I could get nothing into perspective. I was young and ill-educated and I had had to think out my problems in the utter silence that is imposed on every Englishman in the East. I did not even know that the British Empire is dying, still less did I know that it is a great deal better than the younger empires that are going to supplant it.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는 어렸고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동양의 모든 영국인에게 강요된 절대적 침묵 속에서 나의 문제점들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심지어 나는 대영제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하물며 대영제국이 그것(제국주의)을 탈취하려고 하는 신생 제국주의자들보다 그나마 훨씬 낫다는 것조차 알 수 없었다.

 

All I knew was that I was stuck between my hatred of the empire I served and my rage against the evil-spirited little beasts who tried to make my job impossible. With one part of my mind I thought of the British Raj as an unbreakable tyranny, as something clamped down, in saecula saeculorum, upon the will of prostrate peoples; with another part I thought that the greatest joy in the world would be to drive a bayonet into a Buddhist priest's guts. Feelings like these are the normal by-products of imperialism; ask any Anglo-Indian official, if you can catch him off duty.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내가 봉사하고 있는 제국에 대한 증오심과 나의 임무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마음 한 편에는 (인도에 대한) 영국의 지배를 파괴할 수 없는 폭정으로, 굴복한 민중들의 의지를 영원히 탄압한 무언가로 간주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 승려들의 배에 총검을 찔러 넣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와 같은 감정들은 제국주의로부터 파생된 당연한 부산물이다. 근무를 하고 있지 않을 때 인도 주재 영국인 관리 누구에게든 물어보시라.

One day something happened which in a roundabout way was enlightening. It was a tiny incident in itself, but it gave me a better glimpse than I had had before of the real nature of imperialism – the real motives for which despotic governments act. Early one morning the sub-inspector at a police station the other end of the town rang me up on the phone and said that an elephant was ravaging the bazaar. Would I please come and do something about it? I did not know what I could do, but I wanted to see what was happening and I got on to a pony and started out.

어느 날 우회적으로 나를 일깨운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 그 자체로는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내가 이전에 제국주의에 대해 가졌던 진정한 속성을 더 잘 일별하게 되었고, 전제정권이 행동하는 실질적인 동인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이른 아침 도시 반대편 경찰서의 부서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코끼리 한 마리가 시장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가서 뭔가 조치를 좀 취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작은 말을 타고 출발했다.

 

I took my rifle, an old 44 Winchester and much too small to kill an elephant, but I thought the noise might be useful in terrorem. Various Burmans stopped me on the way and told me about the elephant's doings. It was not, of course, a wild elephant, but a tame one which had gone "must." It had been chained up, as tame elephants always are when their attack of "must" is due, but on the previous night it had broken its chain and escaped. Its mahout, the only person who could manage it when it was in that state, had set out in pursuit, but had taken the wrong direction and was now twelve hours' journey away, and in the morning the elephant had suddenly reappeared in the town.

나는 구형의 44구경 윈체스터 소총을 휴대했지만 코끼리를 죽이기에는 너무 작은 총이었다. 하지만 경고용으로는 그 총성만으로도 유용하리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가는 길에 나를 멈춰 세워서 코끼리의 난동에 대해 알려 주었다. 물론 야생 코끼리가 아니라 “발정기”에 접어든 길들인 코끼리였다. 발정기에 접어든 길들인 코끼리들이 의례히 그렇듯이 그 코끼리도 묶여 있었지만, 전날 밤 쇠사슬을 끊고 도망가 버렸던 것이다. 발정 난 코끼리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사육사(머하우트: 인도의 코끼리 부리는 사람)가 코끼리를 추적하러 나섰지만 잘못된 방향을 택해서 지금 12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갑자기 코끼리가 마을에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The Burmese population had no weapons and were quite helpless against it. It had already destroyed somebody's bamboo hut, killed a cow and raided some fruit-stalls and devoured the stock; also it had met the municipal rubbish van and, when the driver jumped out and took to his heels, had turned the van over and inflicted violences upon it.

미얀마 사람들은 무기가 없어서 그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코끼리는 이미 대나무 오두막을 파괴하고, 소 한 마리를 죽였으며 과일가게 좌판을 습격하고는 가축들을 먹어치웠다. 또 도시쓰레기차와 만나 운전사가 뛰쳐나와 도망을 치자, 쓰레기차를 뒤집어서 짓이겨 놓았다.

<24쪽11행>

The Burmese sub-inspector and some Indian constables were waiting for me in the quarter where the elephant had been seen. It was a very poor quarter, a labyrinth of squalid bamboo huts, thatched with palmleaf, winding all over a steep hillside. I remember that it was a cloudy, stuffy morning at the beginning of the rains. We began questioning the people as to where the elephant had gone and, as usual, failed to get any definite information. That is invariably the case in the East; a story always sounds clear enough at a distance, but the nearer you get to the scene of events the vaguer it becomes.

미얀마 사람인 경찰부서장과 몇몇 인도 치안관은 그 코끼리가 나타났던 관할지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지역은 매우 열악한 곳으로, 야자수 나무 이파리로 지붕을 이은, 지저분한 대나무 가옥들이 가파른 언덕 비탈 위를 굽이치며 미로처럼 뻗어 있었다. 그날은 우기가 시작된 숨 막힐 듯이 답답하고 구름 낀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그 코끼리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았지만 속 시원한 어떤 정보(답변)도 얻지 못했다. 그런 일은 동양에서는 늘 있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를 좀 떨어져서 볼 때는 굉장히 분명하게 들리지만 그 사건의 현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애매모호해지는 것이다.

 

Some of the people said that the elephant had gone in one direction, some said that he had gone in another, some professed not even to have heard of any elephant. I had almost made up my mind that the whole story was a pack of lies, when we heard yells a little distance away. There was a loud, scandalized cry of "Go away, child! Go away this instant!" and an old woman with a switch in her hand came round the corner of a hut, violently shooing away a crowd of naked children.

어떤 이들은 코끼리가 이쪽으로 갔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저쪽으로 갔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코끼리 얘기는 아예 들어보지 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온통 거짓말이라고 거의 마음을 굳히자마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오는 고함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은 저리 가세요, 지금 즉시 물러나세요!” 라는 시끄럽고 분개한 외침소리가 들렸고 손에 회초리를 든 나이든 여인이 오두막 구석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서 발가벗은 한 무리의 아이들을 향해 격렬하게 숴이 하고 내쫓고 있었다.

 

Some more women followed, clicking their tongues and exclaiming; evidently there was something that the children ought not to have seen. I rounded the hut and saw a man's dead body sprawling in the mud. He was an Indian, a black Dravidian coolie, almost naked, and he could not have been dead many minutes. The people said that the elephant had come suddenly upon him round the corner of the hut, caught him with its trunk, put its foot on his back and ground him into the earth.

더 많은 여인들이 혀를 차고 탄성을 지르면서 뒤따라 나왔다. 분명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 될 뭔가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오두막을 돌아가자 한 남자의 죽은 시신이 진흙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흑인 드라비다 쿨리로서 인도 사람이었으며, 거의 발거벗었고, 죽은 지 몇 분 안 돼 보였다. 사람들은 코끼리가 갑자기 오두막 모퉁이에서 그를 습격하여 긴 코로 그를 붙잡아, 그의 등에 발을 올려 짓밟고 땅 속에 처박았다고 말했다.

 

This was the rainy season and the ground was soft, and his face had scored a trench a foot deep and a couple of yards long. He was lying on his belly with arms crucified and head sharply twisted to one side. His face was coated with mud, the eyes wide open, the teeth bared and grinning with an expression of unendurable agony. (Never tell me, by the way, that the dead look peaceful. Most of the corpses I have seen looked devilish.) The friction of the great beast's foot had stripped the skin from his back as neatly as one skins a rabbit. As soon as I saw the dead man I sent an orderly to a friend's house nearby to borrow an elephant rifle. I had already sent back the pony, not wanting it to go mad with fright and throw me if it smelt the elephant.

이때는 우기여서 땅이 부드러웠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깊이 1피트, 길이 2야드의 도랑에 파묻혀 있었다. 팔은 십자 모양을 한 채 엎드려 있었고, 머리는 한 쪽 방향으로 확 비틀어져 있었으며, 눈을 부릅뜨고,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이를 훤히 드러내면서 일그러뜨린 채, 얼굴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그건 그렇고, 죽은 사람의 모습이 평화롭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시라. 내가 본 대부분의 시체는 무시무시했다.) 거대한 짐승발의 마찰로 인해 그의 등 피부는 토끼 가죽을 벗긴 것처럼 말끔하게 벗겨져 있었다. 나는 죽은 사람을 보자마자 코끼리용 소총을 빌리러 근처 친구 집에 연락병을 보냈다. 작은 말이 코끼리 냄새를 맡으면 놀라 날뛰어 나를 내동댕이칠까봐 이미 작은 말도 돌려보냈었다.

<26쪽15행>

The orderly came back in a few minutes with a rifle and five cartridges, and meanwhile some Burmans had arrived and told us that the elephant was in the paddy fields below, only a few hundred yards away. As I started forward practically the whole population of the quarter flocked out of the houses and followed me. They had seen the rifle and were all shouting excitedly that I was going to shoot the elephant. They had not shown much interest in the elephant when he was merely ravaging their homes, but it was different now that he was going to be shot.

몇 분 후 연락병이 총 1자루와 실탄 5발을 가지고 돌아왔고, 몇몇 미얀마 사람들은 도착해서 코끼리가 단지 몇 백 야드 거리 밖에 안 되는, 저 아래 논바닥에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사실상 앞으로 나아가자 그 관할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모여서 나를 따라왔다. 그들은 총을 보았고 내가 코끼리를 쏘러 갈 거라는 사실에 모두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코끼리가 자신의 집을 단순히 파괴하고 있을 때는 코끼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코끼리가 총에 맞아 죽을 참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It was a bit of fun to them, as it would be to an English crowd; besides they wanted the meat. It made me vaguely uneasy. I had no intention of shooting the elephant – I had merely sent for the rifle to defend myself if necessary – and it is always unnerving to have a crowd following you. I marched down the hill, looking and feeling a fool, with the rifle over my shoulder and an ever-growing army of people jostling at my heels. At the bottom, when you got away from the huts, there was a metalled road and beyond that a miry waste of paddy fields a thousand yards across, not yet ploughed but soggy from the first rains and dotted with coarse grass. The elephant was standing eight yards from the road, his left side towards us. He took not the slightest notice of the crowd's approach. He was tearing up bunches of grass, beating them against his knees to clean them and stuffing them into his mouth.

그 일은 영국의 군중들에게도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작은 재밋거리였다. 게다가 그들은 고기를 필요로 했다. 그것은 어렴풋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코끼리를 총으로 쏠 의도가 전혀 없었다. - 필요시 단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총을 가지러 보냈다. - 나를 따르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늘 허둥대게 만든다. 어깨 위에 총을 메고 점점 늘어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나를 떠밀면서 내 뒤에 바짝 붙어, 바보처럼 보이면서, 그리고 스스로 바보 같다고 느끼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언덕 아래 오두막들이 있는 지역을 벗어나자, 자갈길이 있었다. 그곳을 넘어 천 야드 건너편에는 경작되지 않은 진흙투성이의 논들이 있었다. 아직 쟁기질은 되지 않았지만 첫 비에 물에 잠겨 있었고 띄엄띄엄 잡초가 나 있었다. 코끼리는 그 길에서 8야드 떨어진 곳에 서 있었고, 왼쪽 옆구리는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군중들이 다가오는 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풀 뭉텅이를 뽑아 정강이에 대고 쳐서 (흙을) 말끔하게 털어내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28쪽 7행> I had halted on the road. As soon as I saw the elephant I knew with perfect certainty that I ought not to shoot him. It is a serious matter to shoot a working elephant – it is comparable to destroying a huge and costly piece of machinery – and obviously one ought not to do it if it can possibly be avoided. And at that distance, peacefully eating, the elephant looked no more dangerous than a cow. I thought then and I think now that his attack of "must" was already passing off; in which case he would merely wander harmlessly about until the mahout came back and caught him. Moreover, I did not in the least want to shoot him. I decided that I would watch him for a little while to make sure that he did not turn savage again, and then go home.

나는 그 길에서 멈췄다. 코끼리를 보자마자 쏘아서는 안 된다는 걸 확신했다. 일을 하는 코끼리를 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 그것은 거대하고 값비싼 기계를 파괴하는 일에 비견될만하다. - 피할 수만 있다면 분명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떨어져서,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기 때문에, 코끼리는 젖소만큼이나 덜 위험해 보였다. 그때 나는 코끼리의 발정이 이미 누그러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육사가 되돌아와 붙잡을 때까지 악의 없이 단지 어슬렁거리기만 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전혀 그를 쏘고 싶지 않았다. 잠시 그를 지켜 본 후 다시 난폭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면 집에 가기로 결심했다.

But at that moment I glanced round at the crowd that had followed me. It was an immense crowd, two thousand at the least and growing every minute. It blocked the road for a long distance on either side. I looked at the sea of yellow faces above the garish clothes-faces all happy and excited over this bit of fun, all certain that the elephant was going to be shot. They were watching me as they would watch a conjurer about to perform a trick. They did not like me, but with the magical rifle in my hands I was momentarily worth watching.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를 따라온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적어도 2천명은 되는 수많은 군중이었고, 매순간 늘어났다. 길을 막고 양쪽 방향으로 기다랗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번쩍거리는 옷 위로 수많은 황색 얼굴들을 - 작은 재밋거리로 흥분하고 온통 행복해하는 얼굴들- 보았는데, 모두들 코끼리가 총에 맞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막 묘기를 보여주려는 마술사를 지켜보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 손에 들려진 마법의 총으로 인해 나는 순간적으로 구경할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And suddenly I realized that I should have to shoot the elephant after all. The people expected it of me and I had got to do it; I could feel their two thousand wills pressing me forward, irresistibly. And it was at this moment, as I stood there with the rifle in my hands, that I first grasped the hollowness, the futility of the white man's dominion in the East. Here was I, the white man with his gun, standing in front of the unarmed native crowd – seemingly the leading actor of the piece; but in reality I was only an absurd puppet pushed to and fro by the will of those yellow faces behind.

불현듯 나는 어쨌든 그 코끼리를 쏘아야한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은 내게서 그것을 기대했고 그렇게 해야만 했다. 2천명의 무언의 재촉(바람)은 계속하라고 저항할 수 없이 나를 압박했다. 그곳에서 총을 들고 서 있던 그 순간, 나는 백인들의 동양에 대한 지배의 무익함, 공허함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무장된 원주민들 앞에, 총을 들고 서있는 백인, 여기에 내가 있었다. 겉으로는 이 작품의 주연이지만, 실제 나는 등 뒤의 원주민(황색인)들의 바람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리는 어리석은 꼭두각시였던 셈이다.

 

I perceived in this moment that when the white man turns tyrant it is his own freedom that he destroys. He becomes a sort of hollow, posing dummy, the conventionalized figure of a sahib. For it is the condition of his rule that he shall spend his life in trying to impress the "natives," and so in every crisis he has got to do what the "natives" expect of him. He wears a mask, and his face grows to fit it. I had got to shoot the elephant. I had committed myself to doing it when I sent for the rifle. A sahib has got to act like a sahib; he has got to appear resolute, to know his own mind and do definite things. To come all that way, rifle in hand, with two thousand people marching at my heels, and then to trail feebly away, having done nothing – no, that was impossible. The crowd would laugh at me. And my whole life, every white man's life in the East, was one long struggle not to be laughed at.

바로 그때 백인이 압제자가 되어 파괴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일종의 공허한 나리라는 상투적인 인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은 “원주민”을 감동시키는 것에 소모하는 것이 통치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위기 때마다 “원주민들”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얼굴은 가면에 맞게 된다. 나는 코끼리를 쏘아야만 했다. 소총을 가지러 보낼 때 그러기로 언질을 준 셈이었다. 나리는 나리처럼 행동해야 한다. 단호해 보여야 하고, 자신의 의향이 결정되어야 하며 명확하게 일을 해야 한다. 이천 명의 사람들이 내 뒤를 바짝 따라 행진하는 가운데 내가 총을 들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맥없이 사라진다. - 아니,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나를 향해 비웃을 것이다. 나의 전 생애, 동양의 모든 백인의 삶은, 조소당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30쪽 17행> But I did not want to shoot the elephant. I watched him beating his bunch of grass against his knees, with that preoccupied grandmotherly air that elephants have. It seemed to me that it would be murder to shoot him. At that age I was not squeamish about killing animals, but I had never shot an elephant and never wanted to. (Somehow it always seems worse to kill a large animal.) Besides, there was the beast's owner to be considered. Alive, the elephant was worth at least a hundred pounds; dead, he would only be worth the value of his tusks, five pounds, possibly. But I had got to act quickly. I turned to some experienced-looking Burmans who had been there when we arrived, and asked them how the elephant had been behaving. They all said the same thing: he took no notice of you if you left him alone, but he might charge if you went too close to him.

그렇지만 나는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다. 코끼리 특유의 할머니 같은 무심한 자세로, 풀 뭉텅이를 정강이에 대고 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코끼리를 쏘는 것이 살인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 때 나이로 동물을 죽이는 일이 꺼려지진 않았지만, 코끼리를 한 번도 쏜 적이 없었던 데다가 결코 쏘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커다란 동물을 죽이는 건 항상 더 나쁜 것 같다.) 게다가, 그 짐승의 임자도 고려되어야 했다. 코끼리가 살아 있으면, 적어도 백 파운드의 값어치가 있지만, 죽으면 상아의 가격인, 오 파운드의 값어치 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행동해야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나는 그곳에 있던 노련해 보이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코끼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코끼리를 내버려두면 신경 쓰지 않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공격해올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It was perfectly clear to me what I ought to do. I ought to walk up to within, say, twenty-five yards of the elephant and test his behavior. If he charged, I could shoot; if he took no notice of me, it would be safe to leave him until the mahout came back. But also I knew that I was going to do no such thing. I was a poor shot with a rifle and the ground was soft mud into which one would sink at every step. If the elephant charged and I missed him, I should have about as much chance as a toad under a steam-roller.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아주 분명했다. 나는 코끼리가 있는 곳, 이를테면, 25야드 이내로 다가가 그의 행동을 살펴보아야 했다. 갑자기 공격해오면, 쏠 수 있겠지만, 내게 신경 쓰지 않으면, 사육사가 돌아올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 안전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러한 일(내버려 두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나의 소총 사격 솜씨는 형편없었고 땅바닥도 부드러운 진흙이어서 발을 뗄 때마다 푹푹 빠져 들어갈 것이었다. 코끼리가 공격해오는데 내가 그를 못 맞히면, 나는 땅 고르는 기계 밑에 깔려버린 두꺼비 신세마냥 위험해 질 것이다.

 

But even then I was not thinking particularly of my own skin, only of the watchful yellow faces behind. For at that moment, with the crowd watching me, I was not afraid in the ordinary sense, as I would have been if I had been alone. A white man mustn't be frightened in front of "natives"; and so, in general, he isn't frightened. The sole thought in my mind was that if anything went wrong those two thousand Burmans would see me pursued, caught, trampled on and reduced to a grinning corpse like that Indian up the hill. And if that happened it was quite probable that some of them would laugh. That would never do.

그러나 그때조차도 나는 내 피부(목숨, 생명)에 대해서는 특별히 염려하지 않았고, 단지 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원주민들의 얼굴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무리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어서 혼자 있다면 느꼈을 법한, 평범한 의미의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인은 “원주민” 앞에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백인은 겁을 먹지 않는다. 내 마음 속의 유일한 생각은 일을 그르치면 이천 명의 미얀마 사람들이 내가 쫓기고, 잡히고, 짓밟혀 언덕 위의 저 인디언의 시체처럼 이를 드러내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들 중 일부는 틀림없이 비웃을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There was only one alternative. I shoved the cartridges into the magazine and lay down on the road to get a better aim. The crowd grew very still, and a deep, low, happy sigh, as of people who see the theatre curtain go up at last, breathed from innumerable throats. They were going to have their bit of fun after all. The rifle was a beautiful German thing with cross-hair sights. I did not then know that in shooting an elephant one would shoot to cut an imaginary bar running from ear-hole to ear-hole. I ought, therefore, as the elephant was sideways on, to have aimed straight at his ear-hole, actually I aimed several inches in front of this, thinking the brain would be further forward.

단 한 가지의 대안만 있었다. 나는 탄창에 실탄을 장전하고 겨냥을 더 잘 하기 위해 길 위에 엎드렸다. 군중은 아주 잠잠해졌고, 깊고, 낮은 행복해 하는 한숨이, 마침내 극장의 커튼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처럼, 셀 수 없이 수많은 목에서 새어 나왔다. 그들은 결국 자기들만의 작은 재미를 누릴 것이다. 그 총은 십자선이 그려진 가늠자가 달린 멋진 독일산이었다. 그때는 코끼리를 쏠 때 귓구멍에서 귓구멍으로 이어지는 가상의 가로줄을 자르기 위해 총을 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코끼리가 옆쪽에 있을 때, 그의 귓구멍을 향해 정면으로 조준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뇌수가 훨씬 더 전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귓구멍 몇 인치 앞을 겨냥했던 것이다. When I pulled the trigger I did not hear the bang or feel the kick – one never does when a shot goes home – but I heard the devilish roar of glee that went up from the crowd. In that instant, in too short a time, one would have thought, even for the bullet to get there, a mysterious, terrible change had come over the elephant. He neither stirred nor fell, but every line of his body had altered. He looked suddenly stricken, shrunken, immensely old, as though the frightful impact of the bullet had paralysed him without knocking him down. At last, after what seemed a long time – it might have been five seconds, I dare say – he sagged flabbily to his knees. His mouth slobbered. An enormous senility seemed to have settled upon him. One could have imagined him thousands of years old.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나는 탕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 반동도 느끼지 못했다. - 총알이 명중하면 절대 듣지 못한다. - 그러나 나는 군중에서 터져 나오는 엄청난 환호성을 들었다. 그 순간, 총알이 그곳에 도착하기에도 짧은 찰나에, 사람들은 기이하고 끔찍한 변화가 코끼리에게 일어날 거라고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휘청거리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다만, 전신의 형상이 변했다. 마치 총알의 커다란 충격이 그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마비시켜, 갑자기 충격을 받고 쪼그라들어 엄청나게 늙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오랜 시간이라고 여긴 얼마 후, - 아마도 5초 정도였을 것이다 - 코끼리는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입에서 침이 흘러 내렸다. 엄청난 노쇠(老衰)가 그에게 내려앉은 것 같았다. (아마) 코끼리가 수천 살은 되었을 것으로 상상했을 것이다.

 

I fired again into the same spot. At the second shot he did not collapse but climbed with desperate slowness to his feet and stood weakly upright, with legs sagging and head drooping. I fired a third time. That was the shot that did for him. You could see the agony of it jolt his whole body and knock the last remnant of strength from his legs. But in falling he seemed for a moment to rise, for as his hind legs collapsed beneath him he seemed to tower upward like a huge rock toppling, his trunk reaching skyward like a tree. He trumpeted, for the first and only time. And then down he came, his belly towards me, with a crash that seemed to shake the ground even where I lay.

나는 같은 위치에 다시 총을 쏘았다. 두 번째 총알에는 쓰러지지 않았지만 코끼리는 필사적으로 천천히 일어나서, 다리는 휘어지고 머리는 숙여진 채, 약하게 곧추 섰다. 세 번째 총알을 발사했다. 그를 무너뜨린 총알이었다. 총알이 가한 고통으로 전신이 흔들리면서 다리에 남은 마지막 힘까지 사라졌다. 그렇지만 쓰러지는 순간 일어서려 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뒷다리가 몸통의 힘을 받아 주저앉을 때, 긴 코를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뻗치고, 흔들리는 거대한 바위처럼 코끼리가 우뚝 솟아오르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이자 유일하게 나팔 같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내가 누워있던 땅바닥마저 흔드는 굉음을 내며, 나를 향해 배를 드러내고 쓰러졌다.

 

<34쪽 18행> I got up. The Burmans were already racing past me across the mud. It was obvious that the elephant would never rise again, but he was not dead. He was breathing very rhythmically with long rattling gasps, his great mound of a side painfully rising and falling. His mouth was wide open – I could see far down into caverns of pale pink throat. I waited a long time for him to die, but his breathing did not weaken. Finally I fired my two remaining shots into the spot where I thought his heart must be. The thick blood welled out of him like red velvet, but still he did not die. His body did not even jerk when the shots hit him, the tortured breathing continued without a pause. He was dying, very slowly and in great agony, but in some world remote from me where not even a bullet could damage him further.

나는 일어났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미 나를 지나쳐 신속하게 진흙땅을 가로질러 앞 다투어 달려가고 있었다. 코끼리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거라는 건 분명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길게 가르랑거리듯 숨을 헐떡이며 매우 규칙적으로 호흡하고 있었고, 커다란 둔덕 같은 옆구리 살은 고통스럽게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다. 입은 크게 벌려져 있었다. - 엷은 핑크빛 목구멍 공동(空洞)속의 저 아래쪽까지 보였다. 오랫동안 그가 죽기를 기다렸지만, 그의 호흡은 약해지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그의 심장일거라 생각한 지점을 겨냥해 남아있는 두 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진한 피가 붉은 벨벳처럼 그에게서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그는 죽지 않았다. 총알이 박혔을 때는 갑작스런 몸의 움직임조차 없었고, 고통스런 호흡만 쉬지 않고 지속되었다. 코끼리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커다란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서는 멀리 떨어진, 총알조차도 그에게 더 이상의 해를 입히지 못할 어떤 세상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I felt that I had got to put an end to that dreadful noise. It seemed dreadful to see the great beast lying there, powerless to move and yet powerless to die, and not even to be able to finish him. I sent back for my small rifle and poured shot after shot into his heart and down his throat. They seemed to make no impression. The tortured gasps continued as steadily as the ticking of a clock.

나는 그 끔찍한 소음을 끝내야겠다고 느꼈다. 거대한 짐승이 그곳에 누워, 움직일 힘도 없지만 죽을힘도 없이 그곳에 누워있는 것을 보면서, 그를 죽일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내 소총을 가져오게 하여 심장과 목구멍 속을 겨냥해 쏘고 또 쏘았다. 별 효과는 얻지 못했던 것 같아 보였다. 고통스런 헐떡거림은 시계의 똑딱거림처럼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36쪽 5줄>

In the end I could not stand it any longer and went away. I heard later that it took him half an hour to die. Burmans were bringing dahs and baskets even before I left, and I was told they had stripped his body almost to the bones by the afternoon.

결국 나는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어서 가버렸다. 나중에 코끼리가 죽는데 30분이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내가 떠나기도 전에 단칼과 바구니를 가져왔는데, 그들은 오후쯤에는 코끼리의 몸을 뼈만 남기고 발라냈다고 했다.

Afterwards, of course, there were endless discussions about the shooting of the elephant. The owner was furious, but he was only an Indian and could do nothing. Besides, legally I had done the right thing, for a mad elephant has to be killed, like a mad dog, if its owner fails to control it. Among the Europeans opinion was divided. The older men said I was right, the younger men said it was a damn shame to shoot an elephant for killing a coolie, because an elephant was worth more than any damn Coringhee coolie. And afterwards I was very glad that the coolie had been killed; it put me legally in the right and it gave me a sufficient pretext for shooting the elephant. I often wondered whether any of the others grasped that I had done it solely to avoid looking a fool.

물론, 그 일이 있은 후, 코끼리를 쏜 것에 대해 끝없는 논쟁이 있었다. 코끼리 임자는 성이 났지만 인도 사람일 뿐이어서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나는 법적으로 정당한 일을 했다. 코끼리 임자가 막지 못하면, 광포한 코끼리는 미친개처럼 죽이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내가 옳다고 했고, 젊은 층은 쿨리를 죽인 이유로 코끼리를 쏜 것은 지독한 수치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코끼리 한 마리는 빌어먹을 코린가 쿨리보다 더 값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쿨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그의 죽음은 나의 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했고 코끼리를 쏜 행위에 대한 충분한 구실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씩 궁금했다. 내가 단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코끼리를 쏘았다는 것을 이해했던 사람이 있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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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iyuri@gmail.com aiy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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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eeqeqe 2017.12.12 0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가 번역했냐~ 별루다~